방금 있었던 일

>새벽 2시
>천장에 벌레가 기어가는 걸 발견함
>저걸 처리하려 일어나기에는 너무 피곤함
>불빛 근처만 기어다니는 것 같아 걍 무시하고 잠
>며칠 뒤 다시 새벽 2시 현재
>같은 생김새의 벌레와 재회
>우리 구면이지?
>오늘은 덜 피곤했기에 놈을 처리할 방법을 고민함
>다소 귀찮음을 무릅쓰고 유리병을 가져옴
>병 입구로 짓눌러 죽이는 멍청한 짓을 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임
>이층침대 사다리를 유리병 뚜껑이 열리지 않도록 잡고 내려오는 것은 꽤 땀나는 일이었음
>현관문 밖 복도 창문을 열고 유리병을 거꾸로 털었음
>자유를 선사하노라 작은 벌레야
>두 번 정도 더 털었음
>여전히 병 안에 딱 달라붙어 있음
>이런씨발
>두손으로 유리병을 꽉 잡고 온 힘을 다해 털어냄
>아직 붙어있음
>이 존만이는 뚜껑이 열리던 병이 털리던 말던 같은 자리만 빙글빙글 돌고 있음
>뭔가 얘를 꺼낼만한 길쭉한 도구를 찾음. 하다못해 전단지라던가.
>오늘따라 아파트 복도가 존나 깨끗함
>씨발(2)
>병을 두들겨도보고 신고있던 슬리퍼 위로 내리쳐도 보고 온갖 개지랄을 함
>심야의 아파트 복도에 유리병을 철썩철썩 후려치는 소리가 존나크게울림
>10분 후 집으로 복귀함
>손에 든 유리병과, 여전히 뱅뱅도는 염병할 벌레새끼와 함께.
>말없이 화장실로 직행함
>아직도 빙글빙글 돌고있는 개자식에게 세정제 스프레이를 뿌림
>졸리고 땀범벅이 된 나
>변기통에 앉아 세면대 위에 올려 놓은 거품범벅 유리병 속의 소리 없는 참화를 바라봄
>나는 언제나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사건과 우연으로 가득찬 혼돈의 규칙을 따라 흐른다고 생각해왔음
>방금 전까지도 멀쩡했던 사람이 말도 안되는 사고에 휘말려 한 순간에 세상에서 사라지게 되었다거나
>시덥잖은 변덕으로 맹수의 이빨에서 벗어나게 된 짐승이나 악의 없는 신발에 밟혀 죽은 개미처럼 생과 사를 가르는 순간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거나 합당한 사유를 붙일 수 없는, 그저 아무렇게나 뽑힌 카드를 나열하는 것처럼 혼란하게 뒤섞인 일련의 사건들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함
>그리고 오늘 밤, 내가 바로 그 혼돈이 되었음
